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소말리아 해역 호송전대 (문단 편집) == 활약상 == * 2009년 5월 4일, 해적에게 쫓기던 [[북한]] 소속 상선 다박솔호를 구출했다. 다박솔호에서 송신된 구조요청을 먼저 수신한 뒤[* 후의 증언에 따르면 다박솔호에서 송신된 구조요청이 서툰 영어로 되어있다는 것과, 같이 들려오는 투박한 한국어 억양으로 인해 북한 선박이라는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저격수가 탑승한 [[슈퍼 링스]]를 출격시켰고 현장에 도착했을때는 다박솔호로 해적선이 3km 가까이 접근한 상황이어서 조준과 동시에 위협기동을 시작하자 줄행랑을 쳤다고 한다. 이어 다박솔호에서 호위를 요청하자 안전지역으로 유도하여 위험해역을 벗어나자 귀함했다. [[파일:99FC04505B68025F12-795x436.jpg]] 귀함하기 전 다박솔호 선원들이 나와 링스 헬기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이 사진에 찍히기도 했다.[* 북한 선박은 행정상으로는 헌법상의 이유를 들어 대한민국 선적으로 간주하지만, 해군 내부에서는 "적"으로 간주해 성격에 따라 적정, 적어선, 적 상선으로 호칭된다.][* 후에 이 소식을 접한 [[탈북민]]들이 감동받았다고 전한다. 북한에서 살때 ‘불구대천의 원쑤’라고 적대심을 갖도록 세뇌받던 한국이, 그것도 대한민국의 해군이 북한 상선을 해적의 위협에서 보호해주고 호위까지 해줬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렇게 좋은 사람들인데 우리는 그동안 죽여 없애야 할 악질들이라고 배웠으니..”라며 다시 한번 북한 정권의 악랄함에 치를 떨었다.] [[파일:external/img.bemil.chosun.com/20110123162613.jpg]] * 2011년 1월 21일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호 구출작전 [[아덴만 여명 작전]]'''에 돌입해 해적 8명을 사살하고 5명을 생포, 한국인 8명을 포함한 선원 21명 전원을 무사히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자세한 것은 [[아덴만 여명 작전|해당 항목]] 참조. * 2011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몰락하던 리비아 내전 당시 청해부대 임무 중이던 최영함이 현지 교민 철수 지원에 투입되고, 2014년에 다시 리비아 정세가 악화되자 문무대왕함이 교민 철수를 위해 투입되었다. * 2014년 8월, 리비아교민 철수작전 [youtube(ghTjD2ECUzY)] * 2015년 4월 3일 [[예멘 내전(2015년)]] 상황이 악화됨에 따라 [[청해부대]] [[왕건함]]에 주예멘 대한민국대사관 임시사무소가 설치되었다. 이는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함상에 대사관이 개설된 사례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504052152545|관련 보도자료]]] 4월 9일에는 예멘 소코트라섬에 잔류 중이던 한국 교민 6명과 외국인 6명[* 미국인 2명, 캐나다인 2명, 뉴질랜드인 1명, 스위스인 1명] 등 총 12명을 철수시켰다.[* [[http://www.mofa.go.kr/www/brd/m_4080/view.do?seq=354479&srchFr=&srchTo=&srchWord=%EC%B2%AD%ED%95%B4%EB%B6%80%EB%8C%80&srchTp=0&multi_itm_seq=0&itm_seq_1=0&itm_seq_2=0&company_cd=&company_nm=&page=1|관련 외교부 보도자료]]] * [[2017년]] [[5월 27일]]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것으로 추정되며 실종상태인 한국인 3명이 탑승한 몽골국적 원양어선의 구출을 위해 출동했다. 다행히 해적은 따돌린 것으로 보이며, 외교부와 남아공 현지 선사와의 교차 연결을 통해 선박과 승선원 전원의 안전을 확인했다는 발표가 나왔다. 연락 두절이 되었던 이유는 기상 악화로 인한 기기고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2018년]] [[3월 26일]] 가나 해역에서 우리나라 선원 3명이 납치되자 28일 소말리아 해역에서 긴급 출동, 12,000km를 3주동안 항해하여 기니만에 4월 15일 도착, 해적들에게 무력시위를 벌이는 협상끝에 한국인 선원 3명을 4월 27일 돌려받았다. * [[2018년]] [[7월 6일]] [[리비아]]에서 한국인 대수로 공사 기술자 1명과 필리핀인 보조인력 등 4명이 현지 무장세력에 [[2018년 리비아 한국인 납치사건|피랍당하자]], 리비아 현지에 급파되었다.[* 정황상 문무대왕함으로 추정된다.] * [[2019년]] [[11월 18일]] 새벽 3시 50분(현지시간 17일 오후 9시 50분) [[예멘]] 해역에서 한국 국적 항만 준설선(웅진 G-16호) 1척과 한국(웅진 T-1100호) 및 [[사우디아라비아]](라빅 3호) 국적 예인선 2척 등 선박 3척(승선원 한국인 2명, 외국 국적자 14명 총 16명)이 [[후티]] 반군에 나포되자 무력시위로 [[강감찬]]함이 급파되었다. 후티 반군은 이후 한국 선박이라는 것이 확인되면 석방하겠다는 입장을 한국 정부 측에 전달했고, 11월 20일 45시간 만에 전원 석방했다. [youtube(A8ly5qbaD_U)] * [[2020년]] [[1월 21일]] 청해부대의 작전반경을 일시적으로 호르무즈 해역까지 확대했다. 이는 미국의 호르무즈 파병 요구에 대한 정부의 답으로, 미국의 호르무즈 호위연합에 참가하지 않은 대한민국의 독자적인 작전이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001&aid=0011348739&isYeonhapFlash=Y&rc=N|#]][* 이와는 별도로 청해부대 소속 연락장교 2명을 미국 주도의 호르무즈 호위연합에 파견하기로 했다.] 해군은 청해부대의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작전지역 확대를 대비해 31진인 [[왕건함]]의 대잠·대공 방어 능력을 보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 2020년 2월 1일(한국 시각)에는 오만 해역에서 연료 부족으로 표류하던 이란 선박을 구조했다. 호르무즈 해역으로 확대한 이후 이란 선박과 직접 접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해부대는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과 식수, 연료를 제공하였다.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926568.html|#]] * 2021년 1월 4일 이란 혁명수비대가 한국 국적 화물선을 나포한 [[2021년 이란 해역 한국 선박 나포 사건]]이 발생하여 청해부대 최영함이 호르무즈 해역으로 급파되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5&aid=0003066997|#]] 21세기 이후의 [[대한민국 국군]]이 동아시아가 아닌 다른 권역에서 해적이나 테러단체가 아닌 '국가' 소속 정규군을 상대로 무력시위를 한 첫 사례이다.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이란 정부 및 주한이란대사 측에서 한국 측과의 협상 과정에서 가장 강하게 불만을 제기한 사항이었으나 정작 [[이란군]]과 [[혁명수비대]]는 이에 대응하는 별도의 보복 조치를 시행하지 못했다. 한국 입장에선 향후 비슷한 일이 또 발생할 시 이란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를 확보한 셈이며, 해군은 호르무즈 해역에서의 독자적인 실전 경험을 축적하게 되었다. * [[2023년 수단 내전]]으로 수단 주재 교민피해가 우려되자 [[프라미스 작전]]의 일환으로 충무공 이순신 함이 무력시위 겸 우리 교민들의 해상 탈출 가능성을 대비해 [[포트 수단]] 인근 해상에 급파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